2008. 1. 4. 16:20
승보기가 하는 여행 이야기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1866년 3월 14일 진리를 증거하다가 순교한 성인 다블뤼 안또니오-안 주교,
오매트르 베드로-오 신부, 위엥 마르틴 루가-민 신부, 황석두 루가회장을
충남 내포지역에서 체포, 서울로 압송 도중 충남 아산군 음봉면 삼거리에 있던
반석에서 네분의 성인에게 포졸들이 떡과 술을 대접한 바 있으며,
1866년 3월 23일 사형언도를 받고 행장인 충남 보령군 오천면 영보리 갈매못으로
장주기 요셉 회장 성인도 함께 끌려 가던중 다시 이 반석에서 안주교님이 백성들과
비밀히 끼여있던 교우와 포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안주교 성인께서는 이 반석에서
마지막 강론을 하시고 다섯 성인은 감사하는 성가를 부르며 순교지로 끌려간
일화가 서린 반석이다

대형 십자가 부근의 이곳은 사형장(혹은 옥터) 이라고 부른다
죄인들이나 천주교를 믿다가 잡혀온 교우들이 형방건물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배교하지 않으면 옥에서 끌어내 이곳에서 처형되기도 한 곳이다
1869년 김요셉(68세)이 치명 순교했으며 전바오로(23세)가 형구돌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름모를 순교자들의 피흘림이 있었던 소중한 순교터이다

연풍은 조선시대에 현감이 고을 수령으로 있던 곳이다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던 자치기구의 하나인 것이 1632년(인조10년)에 건축된
연풍헌 형방 건물로, 교회 박해중 끌려온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심한 고문을 받던 곳이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관아건물에서 볼 수 있는 위엄있는 외관을 잘 갖추고 있으며
일제시대에는 헌병보조 사령부로 쓰여지다가 해방 후 연풍지서로 사용되던 것을
1963년 교회에서 매입, 공소로 사용되었으며 1995년 원형을 살려 복권 하기에 이르렀다

[형돌]
이 돌을 이용해서 죄인들을 처형했다고 하는데
현재 모습으로는 그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승보기가 하는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리산 기마순찰대 (0) | 2008.01.05 |
---|---|
옥계폭포 (0) | 2008.01.05 |
금속활자 (괴산 연풍) (0) | 2008.01.04 |
한지공예 (괴산연풍) (0) | 2008.01.04 |
[괴산 연풍] 흙쟁이 도예교실 (4) | 2008.01.04 |